라구자 (크로아티아, 16세기)

라구자 (크로아티아, 16세기)

오늘날 두브로브니크라고 하는 이 크로아티아 도시는 극적인 건축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해졌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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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엑스트라

질문

  • 두브로브니크는 현재 어느 나라에 위치합니까?
  • 라구자는 어느 해안에 위치합니까?
  • 두브로브니크는 다른 이름으로 어떻게 부릅니까?
  • 라구자는 어느 나라의 중심지였습니까?
  • 라구자는 무엇 덕분에 부유해졌습니까?
  • 16세기 때, 라구자는 가장 큰 유럽 도시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맞습니까?
  • 라구자는 16세기 때 무엇으로 유명했습니까?
  •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은 누구였습니까?
  •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은 얼마나 깁니까?
  • 다음 중에서 어느가 라구자 방어 시스템의 일부가 아닙니까?
  • 라구자 근처에 어느 산이 있습니까?
  • 라구자의 이름이 유래한 그리스어는 무슨 뜻입니까?
  • 두브로브니크의 이름이 유래한 슬라브어는 무슨 뜻입니까?
  • 두브로브니크의 주요 도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 다음 중에서 어느가 현재 두브로브니크의 관광입니까?
  • 다음 중에서 어느가 루자 광장의 유명한 일부가 아닙니까?
  • 사료에 따르면, 16세기 때 라구자는 배를 몇 척 갖고 있었습니까?
  • 스폰자 궁은 어떤 양식으로 지어졌습니까?
  • 스폰자 궁이 지어진 곳에는 그전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 성벽 옆에는 총 몇 채의 요새가 있습니까?
  • 도시 방어 요새 시스템의 가장 북쪽에 있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 항구를 어느 건물이 지키고 있었습니까?
  • 스트라둔의 서쪽 끝에 어느 건물이 섭니까?
  • 라구자의 가장 동쪽에 있는 건물이 어느입니까?
  • 라구자의 가장 서쪽에 있는 건물이 어느입니까?
  • 아드리아 해는 어느 바다의 일부입니까?
  • 오노프리오스 분수는 이름을 누구를 따라 받았습니까?
  • 루자 광장에서 서는 기둥은 누구를 따라 명명되었습니까?
  • 어느가 가장 큽니까?

장면

라구자

사료에 따르면, 아드리아 해의 해변에 위치하는 두브로브니크라는 도시는 7세기에 세워졌다. 원래 라구자라고 불렸는데 이 이름의 유래를 알수 없다. 아마 '라우(lau)'라는 그리스 단어에서 비롯되었고 돌, 바위를 의미한다. 두브로브니크라는 이름은 처음에 12세기에 나왔는데 'dubrova'라는 슬라브족어에서 유래하고 오크 숲을 뜻한다.

처음에는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1204년에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후 150년간 베니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시기 동안, 도시의 무역은 번창하고 있었다.

라구사 공화국은 1358년에 설립되었다. 헝가리 종주권 아래에 있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자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16세기에, 라구자는 베니스하고 오스만 제국과 싸워서 자주권을 성공적으로 지킬 수 있었다. 1667년에는 대지진을 겪었으므로 거의 온 도시가 파괴되었지만 대대적인 파괴에도 불구하고 곧 재건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때, 공화국으로서의 상태가 그만두게 되었으며 빈 회의 다음에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지배를 얻었다.

제1차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무너졌을 때, 이 도시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왕국, 1929년 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속되었다. 현재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는 이 도시는 크로아티아에 있다. 크로아티아는 1991년에 독립했다.

도시

성벽

라구자를 둘러싸는 성벽은 중세 때 유럽에서 가장 강화된 요새들 중의 하나였다. 또, 몇세기 동안 경쟁자 (예를 들어서 베니스), 그리고 오스만 제국과 싸울 때 도시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벽은 1,940 m 길고 3-6 m 두껍다. 요새의 대부분은 14세기와 15세기 때 지어졌다. 요새5 채, 그리고 벽 옆에 수많은 도 섰다.

벽은 보카르 탑에서부터 레벨린 요새까지 이어졌다. 이 일부의 가장 높은 점25 m이다.

요새

성 요한 요새 (St John Fortress, 다른 말로 물로 탑 Mulo Tower)은 방어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일부였다. 이 거대한 복합 건축은 16세기 중간에 최종 모양을 얻었다. 건설은 이전에 지은 요새 부분을 연결하고 새로운 일부를 추가해서 1557년에 완성되었다. 주요 기능은 항구지키고 해상교통을 감독하는 것이었다.

레벨린 요새(Revelin Fortress)는 도시의 동부에 위치한다. 동쪽 문을 지키도록 플로체 게이트(Ploče Gate) 밖에서 세웠다. 1549년에 건설되었다. 이름은 아마 'rivelino'라는 말에서 유래하는데 성벽의 가장 취약한 일부와 반대편에 있는 일부를 가리킨다.

민체타 탑(Minčeta Tower)은 성벽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이 큰 원형 방어 구조는 특정적인 고딕 양식 돌림띠를 갖고 있다. 15세기에 복원되고 재건되었다. 대륙에서 오는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데 주요 역할을 했다. 탑에는 대포가 9 개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이반 라블랴닌(Ivan Rabljanin)이 만든 청동 대포이다. 그 사람은 시계탑의 종을 만들기도 했다.

보카르 탑(Bokar Fortress)은 어쪽 입구인 필레 문(Pile Gate)을 지키도록 세워졌다. 이 2층 요새는 최종 상태를 16세기 전반에 얻었다. 민체타 탑과 같이 서쪽에서 오는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성 로렌스의 요새(St Lawrence Fortress)는 높은 절벽 위로 세워졌다. 도시의 서부를 바다하고 대륙에서 오는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기능이 있었다. 아마 11세기에 지어졌지만 15세기와 16세기 때 복원되었다. 삼각형 평면도는 절벽의 외곽을 더듬는다. 세 군데의 테라스에는 대포가 10 개 있었는데 가장 큰 것은 'Gušter'(도마뱀)이라고 한다.

루자 광장

스폰자 궁(Sponza Palace)은 스트라둔의 끝점, 루자 광장의 북부에 있다. 원래 거기에 수조가 있었는데 이름이 그것에서 유래한다. ('spongia')

1516년1522년 사이 고딕 양식르네상스 양식을 따라 지어졌다. 안에는 사무실, 은행, 보세 창고, 재무부와 무기고가 있었다. 이 큰 네모난 건물 안에 아트리움도 있었다. 운 좋게, 1667년의 지진 때 이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다.

라구자의 중심가스트라둔(Stradun), 아니면 다른 말로 플라자(Placa)인데 약 300 m 길고 필레 문과 루자 광장을 연결한다. 서쪽 끝과 동쪽 끝에도 오노프리오 델라 카바가 만든 분수를 찾을 수 있다. 스트라둔은 서대문과 동대문을 연결하니까 13세기 때 가장 중요한 대로가 되었다. 1468년에 석회석으로 덮였다.

루자 광장(Luža square)에서 서는 31 m 높은 종탑은 1444년에 세워졌다. 스트라둔의 동쪽 끝에 있다. 2톤 넘는 청동 종은 1506년에 (아니면 1509년) 두었다. 도시의 대포도 만든 이반 라블랴닌이 제작했다. 종탑의 목재 조각상들은 그해 청동 조각상들로 대체되었다. 191 cm 높은 조각은 로마 전사를 나타낸다. 주민들은 마로와 바로, 다른 말로 젤렌치('Zelenci', 초록색 남자들)라고 하는데 이름은 청동 위에서 몇년 후에 생기는 녹청 때문에 생겼다.

중세 때, 도시의 물 공급을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처음에, 라구자에게 물을 제공하는 데 수조가 쓰였다. 가뭄 때문에 소용이 없었을 때 무역선은 식수를 가져왔다. 1436년에, 시의회는 근처의 샘에서 물을 얻기 위해 송수로를 만들라고 했다. 건설이 완료된 후, 이탈리아 건축가 및 조각가 오노프리오 델라 카바(Onofrio della Cava)는 두 분수를 설계했다. 루자 광장에서 종탑 아래에 있는 작은 오노프리오 분수는 1440년1442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올랜도의 기둥이라는 특정적인 석주는 루자 광장에서 선다. 전설에 따르면, 기둥에 새긴 모습은 중세 때의 전사, 올랜도를 묘사하는데 그 사람은 8세기 때 아랍족과 싸워서 이 도시를 해방시켰다. 이 기둥은 1418년에 두 명의 조각가, 안툰 두브로브차닌(Antun Dubrovčanin)과 보니노 디 밀라노(Bonino di Milano)가 만든 것이다.

기능이 아마 다양했을 것이다. 기둥 위에 올라가서 군중 연설을 할 수 있었으며 위에 있는 구명에 깃대를 꼿을 수 있었다. 공공 처벌도 아마 이 근처에 실시되었다.

산책

애니메이션

내레이션

라구자라는 중세 도시, 오늘날 두브로브니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7세기에 아드리아 해의 해변에 세워졌다. 위치 덕분에, 연해 무역에 참가해서 부유해질 수 있었다. 번성하고 있는 도시였지만 때문에 정복하려는 나라의 타겟이 되기도 했다.

라구자의 주민들은 지난 몇세기가 흐르면서 많이 강화된 요새를 지었다. 세력은 이렇게 주변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라구사 공화국황금기16세기였다.

라구자는 성벽과 요새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다. 궁월, 성당, 광장들과 항구는 다 이 르네상스 도시가 얼마나 번창했는지를 보여준다.

두브로브니크의 고도는 1979년부터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관련 엑스트라

중세 때의 베니스

중세 때 베니스의 부유함은 번영하는 연해 무역 덕분이었다.

항구

항구는 산업과 해상수송에 필요한 시설을 제공한다.

바라주딘 요새

이 아름다운 성은 크로아티에 북부에 위치한다.

중세 때의 탑과 성관

요새의 구조는 군사 기술과 같이 발전했다.

중세 도시

중세 도시 주택은 돌이나 벽돌로 세워졌고 몇 층 높은 건물이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궁전 (스플릿, 크로아티아)

이 요새 같은 궁전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고향 근처의 해변에서 지은 궁전이었다.

레판토 해전 (1571년)

오스만 해군은 신성 동맹에 의해 큰 패배를 당했다.

16세기의 알람브라 궁전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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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폭시오메노스

이 특정적인 고대 그리스 조각상은 아드리아 해의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이반 메슈트로비치: 크로아티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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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차림 (서유럽, 16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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